DATE: 2011.01.06

DISTANCE: 18.53km(374.3km)

DEPARTURE: Muna

ARRIVAL: Uxumal

 어제 그 개들이 짖는 소리에 깼다. 멕시코하면 더울 것 같고 실제로도 매우 덥지만 텐트에서 자고 일어난 순간 만은 정말이지 춥다. 바닥에서는 냉기가 그대로 올라오고 옷은 다 여름 옷이라서 껴입어봤자 별로 안 두껍다. 우리 텐트는 바람은 막아주지만 최대한 가벼운 녀석으로 고른지라 두께가 비닐봉지 수준이다. 침낭에 들어간 채로 번데기처럼 꼬물거리다 나오니 가방이며 안장이며 다 이슬에 젖어있다. 짜증이 밀려온다.

 자전거 여행의 장점이라면 지나가는 동안 이곳저곳을 꼼꼼히 볼 수 있다는 것일테고, 단점이라면 아무래도 버스여행자들에 비해 기동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깜뻬체가 규모있는 도시있긴 했지만 관광을 하지 못했고 그 외에는 Ciudad del Carmen에서 부터 이곳 Muna까지는 계속 시골마을 이었다. 특히 어제갔던 마쉬까누는 진짜 시골이었다! 볼거리가 슬슬 떨어져가는 참이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거대 피라미드로 유명한 Uxumal(욱스말, 욱쉬말이라고도 하는데 현지인들 발음 들어보면 우쉬말인거 같다. 원주민어에서 온 단어에서 x가 종종 이렇게 발음된다)에 간다. 꺅! 우리 여행은 주로 멕시코에서도 관광지인 유카탄 반도 중심이고, 유카탄 반도는 산재해있는 다양한 원주민 문명의 돌 유적, 특히 피라미드로 유명한 곳이다. 피라미드는 이집트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 이곳 멕시코야 말로 수도 없이 많은 피라미드로 유명하다. 팀 내에서도 유적 및 역사 조사를 담당한 웅이랑 명진언니가 들뜬 것 같았다. 낮에 일찍 도착해서 천천히 여유롭게 보기 위해 오늘 주행거리는 20km 정도로 잡았다. 넉넉히 2시간이면 간다. 아침 일찍부터 출발할 필요도 없어서 평소와 달리 가게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 천천히 식사를 하고, 점심으로 먹을 햄버거도 싸서 나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명진언니의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다. 깐꾼의 '깐꾼쉼터'라는 곳을 통해 쿠바로 들어가는 항공편을 예매해 뒀는데 오늘 안에 입금하지 않으면 취소가 된단다. 그것도 특정 은행으로 입금은 해야한다. 취소된 표를 다시 예매하기도 쉽지않을 뿐더러, 끌어다 쓸 하루이틀의 여유도 없는 우리 여행에서는 큰 곤경이다.

...아침먹은 곳에서 이곳에 바나멕스(Banamex)나 스코티쉬 은행(Scotish Banco)이 있냐고 묻자 당연히, 없지~~ 그래서 가까운 곳에 있냐고 물으니 옆 마을엔 있단다. 차로 15분 거리. 그러면.. 자전거로는????? 거리상 짐 없이 달리면 1시간은 족히 달려야 할것 같았고 오토바이 택시에게 옆 마을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묻자 1시간 왕복이며 100페소를 달라고 한다. 소형 봉고차 택시 형태인(멕시코에선 콜렉티보라고 부르며 버스노선이 없는 경우에 있으며 주로 콜렉티보로 이동하는 멕시코인들이 꽤 있다.)콜렉티보를 타면 12페소인데 사람이 다 찬 경우에만 출발을 한다고 한다. 어쩌지 망설이다 결국 콜렉티보 택시를 타기로 한다. (명진) 

 

 명진언니와 두현오빠만 급하게 다녀오기로 했다. 나머지 네 명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무나는 작고 평화롭고 밥이 맛있는 동네지만 구경할 것이  없다. 그럴듯한 물건을 파는 가게는 거의 없다. 있어도 우리한테는 짐이다. 내 생각에 이 마을에서 제일 신기한 볼거리는 동양인 자전거 여행자인 우리다. 그래도 여행하다 보면 할일 없는 시간을 재미지게 보내기 위해 나름의 재주와 기술이 생긴다. 원래 자기 성격에 맞춰서.

 우선 이주언니. 옷에 관심이 많은 언니는 바로 마을 광장 한구석에 옷을 구경하러 간다. 한구석에 무더기로 쌓여있는 옷가지 속에서 언니가 매의 눈으로 가장 예쁜 옷을 골라내었다. 그런데 이런 동네에 이런 옷을 입을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싼 옷이라도 더 깎고 싶은것이 곤궁한 배낭여행자의 마음이다. 결국 언니는 해웅이를 불렀다. 우리팀 물건값 깎기의 대가가 두명 다 투입된 셈이다(프로필 참조). 그리고 성공했다! 획득한 아이템을 갈아입을 곳이 없어서 언니는 우리가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갔던(그리고 갈때마다 6명이서 돌아가며 씻으며 민폐끼친)식당에 옷을 갈아입으러 다시 갔다. 우리같이 여행하다보면 누구라도 뻔뻔해질거다. 썬글라스까지 꺼내 쓴 언니의 모습에 멕시코 청년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금발 미녀가 한국 시골에 나타나면 저렇게 쳐다볼까.

애들이 은행에 간 동안 시장조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대~박!!!!!

'탱크탑'이 있는게 아닌가! 와우~~

그래서 난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ㅋㅋㅋㅋㅋㅋ

결국 웅이를 불렀다. 그는 스페인어를 잘하니깐^^히히히히

웅이는 데스꾸엔또(descuento: 디스카운트)를 내 대신 해주었다.

나는 웅이보고 너는 남자니깐 아줌마한테 먹힌다고 너가하면 100프로 깎아준다고 달콤한 유혹을 했고

웅이는 내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래서 30빼소 짜리를 25빼소로 깎아서 구입했다!

우리나라돈으로 치면 얼만주 아러?ㅋㅋㅋㅋㅋ2500원짜리 탱크탑임

난 졸라 반해버렸다.

웅이는 참 멋지다! 장터를 웃음바다로 만들며 아줌마들을 사로잡았으니까는!!

결국 난 그 옷을 또 입고 쌩 패션쑈쑈쑈쑈쑈를 시작했다. 암쏘핫~(이주)

 

 

쏘 핫 한 이주언니가 산 열대어같은 탱크탑.

멕시코 시티에서도 이런 옷 입는 현지인들은 드물다.

종석이는 호기심이 많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혼자 어디론가 가있는데 뭘 하고왔는지 말은 잘 안한다.

 

 멕시코 시골에는 이런 아케이드 게임이 많다. 추억에 빠진 백종석군.

 해웅이는 현지인들과의 스포츠, 특히 축구를 즐긴다. 이 녀석 친화력은 보고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영어도 안통하는 멕시코 시골에서도 예외는 없다.

마쉬까누에서 애기들하고 공차며 놀아준다고 발이 계란후라이가 된 것도 해웅이였다. 오늘도 축구와 특유의 친화력으로 친구를 만든 것 같았다.

호세와 얘기를 나누다가 축구 얘기가 나왔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건지, 잘한다는 건지 엄지를 치켜세운다. 그러더니 어딘가로 사라졌다.

잠시후 축구공을 가지고 왔다. 축구를 정말 하고 싶은데, 어제 아스팔트에서 축구하다가 발바닥이 익어서, 축구를 못하겠어라고 말하려

다 그냥 운동장으로 갔다. 나와 종석이 그리고 호세와 알베르토 그리고 또 한 명(이 사람 이름은 모르겠음) 이렇게 5명이 축구를 했다.

국가 대항전을 하려다 그냥 섞어서 팀을 짰다. 씬꼬! 씬꼬! 라고 외쳤다. 5(cinco)점 내기 하자는 거였다. 다 알아듣는다. 알아듣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모두 맨발로 공을 찼다. 골을 넣으면 서로 하이파이브도 하고, 공을 뺏으려 부대끼기도 했다. 그렇게 땀을 함께 흘리고 나니,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나랑 종석이가 음료수를 사줬다. (해웅)

 그리고 나는 그림을 그린다. 헤나를 그리게 된 후로 도안을 직접 짜본다든지 하면서 시간이 남을 때 빈종이에 이것저것 슥슥 그리게 되었는데 막상 그리다 보면 헤나콘으로는 도저히 그릴 수 없는 복잡한 모양을 그리게 된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도 심심할 때면 일기를 쓰거나 공상을 하거나 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오늘은 생각난 김에 일행들에게 헤나를 그려주었다.

                                           오딧세이는 종석이 자전거 이름. 

헤나를 그리고 있으니 신기했는지 사람들이 몰려온다. 하나둘 수줍게 와서 자기도 그려달라고 했다. 이름을 써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한글로 '한국'이나 '대한민국'을 써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난생 처음보는 한국어가 그네들에게 상형문자처럼 신비롭고 예뻐보였는지도 모른다. 어느순간 우리는'어제 자전거타고 왔다는 이상한 동양인들'에서, 이주언니와 해웅이의 물건 깎기, 헤나, 특히 해웅이와 종석이의 축구 등을 통해 '특이하지만 재밌는 친구들'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우리를 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소깔로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사람들이 와서 말을 걸어 주었다.

크. 나는 이런 순간이 정말 좋다.

이분이 가르쳐주신 마야어 몇마디는 여행하면서 요긴하게 썼다.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둘이 돌아왔다. 콜렉티보를 타고 기어이 갔다왔건만 결국 표는 취소되었단다. 하루 늦게 떠나게 되었을 뿐더러, 월요일부터 유류할증료가 올라 인당 19달러나 더 지불해야 했다. 더운날 고생도 고생이고 시간도 허비한 셈이다. 15일 비행기를 안탈 거였으면 메리다에 가서 결제해도 되는데...그놈의 결제하기가 힘들어서 이런 쌩고생이라니. 이럴 때면 한국이 편한 나라는 맞구나 하고 깨닫는다. 늦은 점심으로 우쉬말에서 먹으려 했던 햄버거를 먹었다. 괜히 미리 주문해놨다. 물먹은 빵에 눅눅한 감자튀김이라니...ㅠㅠ 게다가 오전 주행을 하나도 안했더니 배고프지도 않았다. 한참 해가 뜬 1시30분쯤 우쉬말을 향해 출발했다. 피라미드를 볼 시간이 너무 없다.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급히 출발한다.

 그런데 그 길도 단순한 길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무나로 들어설때 오르막길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우쉬말을 출발하는데 바로 오르막길 시작됐다.12분 정도 오를 정도로 짧았지만 강렬한 오르막길 이었고 그 이후로도 길은 오르락 내리락을 계속해야 했다. 그래도 대체로 내리막길이었지만 전.혀. 신나지 않았다. 내일 다시 돌아와야 하는 길이니까. 이 내리막길이 내일은 오르막길이다. 그놈의 유적지 한번 보기 참 힘들다. 마야인들은 밀림에서 살았으니. 눈물이 날 뿐이다.

2시 40분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지나 우쉬말이 코앞에 보이는 지점에서 종석이가 멈춰서고 자전거를 만진다. 종석이는 주행할 때 잔움직임이 많은 편이어서 (우리끼리는 촐랑촐랑거린다고 한다) 진작부터 짐받이가 반쯤 부러졌다. 또 짐받이가 풀렸나보다 했는데 펑크란다. 그것도 엄청난...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피라미드는 마법사의 피라미드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하루밤만에 마법사가 지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고학적 연구 결과 오히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지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명진언니 말로는 떼오띠우아깐(Teotiuacan) 피라미드와 비교한다면 크다고 할 순 없지만 웅장했고 떼오띠우아깐은 그냥 직각형의 느낌이라면 이곳은 둥근 느낌이면서도 한 면은 계단이고 반대편은 계단이면서도 장식이 되어있다. 지도나 가이드북을 가지고 오지않아 미리 읽은 내용일 되새길 뿐이었다. 딱 들어가면 눈에 쏙쏙 관광 포인트가 보이길 바랐건만 그저 아마 이곳이 이곳일거야 라면서 추측을 해 볼 수 있었다. 나나 이주언니는 아는게 없으니 보이지도 않아서 새삼스럽 후회했다. 아무리해도 준비는 부족하건만...웅장하고 아름다운 유적이었던 만큼 더더욱 아쉬운 순간이었다.

 이 날 찍은 사진 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사진.

피라미드 올라가느라고 헥헥거리다 그냥 찍었는데 뭔가 느낌있다.

 퇴장하고나서 몇시간 후에 다시 빛과 소리의 쇼를 보러 가야했다. 그 사이에 저녁거리를 해결해야 했는데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주위에 음식을 파는 곳이 없다!

 기념품샵 옆에 식당이 둘셋 있긴 했지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려면 100뻬소는 내야했다. 우리 처지에서는 도무지 낼 수가 없는 돈이다. 우쉬말 근처에는 마을이 없다. 무나에서 처럼 손쉽게 끼니를 해결할 수 없다. 다른 관광객이라면 그냥 이런 음식을 먹든지, 차를 타고 나가서 밥을 사먹으면 될테니 굳이 싼 음식점이 없는 거였다. 우리같은 자전거 여행자로서는 발을 동동 굴릴 일이다. 상황도 문제다. 왕복 40km를 밤에 달리기는 위험하고, 그것도 빛소리쇼 전까지는 다시 와야한다. 불가능하다.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최소 배고프지는 않게 잘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먹는게 제한되면 우울해진다. 하지만 오늘 저녁은 어쩔 수 없이 매점에서 산 (그나마도 비싸서 마음대로 고르진 못했다) 과자 몇봉지와 비상식량으로 쟁여둔 과자를 꺼내야했다. 앉을 곳이 없어 자전거를 세워둔 주차장에서 먹었다. 허기는 달랬지만 속이 불편하고 비참했다. 값싸고 맛있는 요리를 먹었던 무나 생각이 나면서, 내일 아침엔 무조건 빠르게 돌아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멕시코에서는 향신료가 들어간 독특한 과자는 되도록 시도해보지 말기를 바란다.

과자가 신 맛이 난다. 감자칩은 어느나라나 다 비슷한 것 같다.

대충 끼니를 해결하고 나서 다시 빛과 소리의 쇼를 보러 들어갔다.

 밤에 다시 보는 피라미드는 새로웠다. 길이 위험해서 조심조심 들어갔다. 스탠드처럼 생긴 높은 지점에 앉으니 우쉬말의 주요 유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야기가 있었는데, 우쉬말과 주변의 세력들, 그리고 마야의 신들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스페인어 능력자인 명진언니가 말해줬다. 제발 영어로 해달라고요!) 소녀의 목소리, Chac(챡: 비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장면 등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이 나오지는 않았고 빛과 효과음에 맞춰 수많은 성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틀어주는 식이었다. 그때그때 맞추어 다양한 빛을 다양한 각도에서 쏘았다. 프랑스 에펠탑 앞 에서의 빛과 소리쇼를 봤던 두현오빠는 실망했다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나름 괜찮았다.

  사람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려 주차장 구석의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잠을 청했다. 코앞의 캠핑장에서는 캠핑카를 끌고다니는 가족이 안락하게 쉬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무나로 돌아가서 맛있는 밥이나 먹어야지하고 다시 한 번 결심했다. 이 순간 무나는 우리 마음 속에서 거의 뭐 고향, 휴식처, 내 한 몸 누일 곳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