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매우 밝다

달이 매우 밝다

달이 매우 밝다

달이

매우

밝다,

도둑질 하기엔 말이다.

24화. Retirada 후퇴

2011년 1월 19일 02:00am, Santa Cruz del Norte, Cuba

안 좋은 꿈을 꿔서 바람을 쐬러 텐트 밖으로 나왔다.

텐트 밖으로 나와 체조를 하다가 자전거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밤이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덩어리가 작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가가 보았다.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후레쉬를 비추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 해웅 -

해웅이 나를 조용히 깨우더니 놀라지 말라며 얘기한다.

"형, 자전거 4대가 없어졌어요"

잠이 단박에 깬다.

잠시 멍해있다가 텐트 밖으로 나섰다.

춥다. 꿈이 아니다.

만감이 교차한다.

놀람, 분노, 패배감, 슬픔, 안타까움....

그리고 어쩐지 모를 편안함!

- 두현 -

두현과 명진의 자전거와 짐을 제외한 모든게 사라졌다.

범인이 남은 두 대를 가지러 올 가능성이 있으니 텐트 안에서 잠복하고 있기로 한다.

감기 기운이 있는 종석이를 빼고 해웅과 두현 둘이서 교대로 눈을 붙이기로 했다.

그러나 날이 밝도록 범인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나 차량은 오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전부였다. This is all we have. All gone.

아침에 일어나서 그냥 있을 순 없었다. 내 가방을 찾아야만 했고....

그래서 난 혹시나 내 가방을 어디다 버리진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찻길로 나와 뒤지기 시작한다.

어떤 아파트 같은 건물이 보여서 들어가본다. 혹시 이 동네 사람이 훔쳐간거 아닐까....

뒷마당을 보니 숨길 수도 있겠다 싶어 유심히 두리번 거리는데 어떤 아저씨를 본다.

자전거 잃어버렸다고 얘기하지만 뭐라 하시는지 전혀 알아 들을 순 없다.

아줌마가 나한테 너무 무섭게 소리를 질러댄다. 갑자기 어깨가 움츠러든다.

Salida를 마구 외치길레 나가라고 하는구나...그제야 안다.

아무튼 안되는 스페인어로

자전거 4대를 잃어버렸고 난 찾으러 다니고 있는거고 내 아미고들은 저쪽에 있다고 얘기해준다.

아줌마가 너무 무서워서 나는 우는 시늉을 한다. 난 참 순발력이 빠른 연기자다.

다른 아줌마를 부른다... 헉....내가 일을 너무 크게 벌린듯하다.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모조리 나오기 시작한다.

이게 아닌데.....나 말 못하는데.....

어째튼 지금 지어야 하는 표정은 슬픈 표정연기다. 불쌍한 척 하기!

- 이주 -

이보다 절망적일 수는 없다. Desperate than ever, any one

길을 따라나선 이주가 오지 않아 두현은 자전거를 타고 뒤쫓아 갔는데

이 대단한 아가씨는 이번에도 특유의 표정연기와 애교로

어떤 빌라의 주민들에게 위로를 받고 있었다.

정말이지...이것도 능력이다!

한 할머니가 울상을 짓고있는 이주의 볼을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자전거는 잃어버렸지만 삶은 잃어버린게 아니지 않느냐'며 위로해 주신다.

통하지도 않는 스페인어로 어떻게 상황설명까지 마치고 경찰을 부른 상태란다!

혹시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겁이 났다. 경찰이라.....ㅠㅠ

두현이가 나를 태우고 우리 캠핑 장소로 돌아간다.

경찰이 진짜로 와 있다.

그 착한 아줌마도 와 계신다.

'괜찮아 다 잘 될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우린 참 많은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것 같다....

엄마가 알면 기절하겠다.

- 이주 -

경찰들이 타고온 지프차. 운전사가 매우 아끼는 이 차는 중국산이다.

Police car, made in China, which is very beloved by the driver.

경찰이 왔다. 지프차에 무려 7명이 타고 왔다.

간단한 절도사건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인거다. 이 한적한 촌에 경찰에게 할 일이 생긴거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한 에피소드 같은 일이 이 사람들에게 펼쳐지고 있다.

- 두현 -

남은 짐과 자전거를 싣고 경찰서로 향했다.

관할 구역에 비해 지나치게 커보이는 경찰서에는

할 일 없는 경관들이 삼삼오오 모여 벽에 기대서 떠들고 있다.

경찰서의 할 일 없는 사람 중 한 명 Antonio. 그는 내무부의 직원이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동사무소 직원 쯤.

그는 이 날 하루동안 우리와 수다떠는게 업무로 주어졌다.

Our one-day Nanny, Antonio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도 모른채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중간에 잠깐 진술할 때가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컴퓨터에는 미국의 윈도우OS가 설치되어 있었다.)

열이 났던 종석은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

간호사의 섹시한 스타킹에 반하지 마시라. 저 분은 마흔이 넘은 아주머니다. 쿠바에서 스타킹의 종류에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으리라.     X-Ray촬영 당하고 있는 종석. 왠지 굴욕적.   허술한 시설이지만 무료로 X-Ray촬영을 해주었고 의사들도 원인 부위를 직접 찾내는 정도의 상당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주사가 매우 아팠는데 효과는 그만큼 좋았단다. 약값만 조금 받은 이 진료 덕분에 종석이는 금방 열이 내렸다. 서에 상주하는 나이든 간호사가 계속 종석이의 상태를 체크했다.

경찰서에서는 공짜 점심과 저녁식사를 제공해 주었다.

구내 식당의 식단은 맛도 좋았고 강한 맛은 아니었지만 담백했다.

게다가 다른 직원들보다 더 많은 양을 배식해 주었다.

쿠바의 형 누나들의 몸매가 괜히 섹시하게 아니다. 건강하게 먹기 때문이리라.

아래는 후식으로 먹는 벌꿀푸딩(?)

근데 4시 쯤, 내 자전거를 사람들이 끌고 온다!!!!!!!!!!!!!

대박이다.....이건 기적이다. 쿠바는 참 신기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찾다니 어떻게 찾은거지?

너무 반갑고 황당하고 웃기고 이건 완전 시트콤이다.

내가 갖고있던 삼각대도 찾았다.

이건 말이 안된다...난 삼각대를 그냥 묶어두지도 않고 그냥 짐받이 위에 올려놨는데

난 쿠바 경찰 멋지다고 칭찬을 해준다.

어쩌면 이 사람들... 진짜로 다 찾을지도 모른다.

너무 신기하고 기대도 더 커진다.

개를 동원한다 하고 지문채취도 한다 한다.

- 이주 -

수사를 위해 동원된 경찰견. 차의 뒷칸에 송아지만한 독일 셰퍼드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German Shephard for Investigation

"Viva el 52 Aniversario de la Revolucion" - 혁명 52주년 만세!...혁명이여, 엿이나 먹어라

하지만 수사에 더 이상의 진척은 없다.

아바나로 돌아가는 수 밖에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

그래서 경찰이 제안하는 교통수단-히치하이킹이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쿠바 경찰은 지나가는 자동차를 '착출'할 공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차를 잡아서 우리를 목적지까지 보내주겠다고 했다.

도로변에 경찰차가 서있자 차들이 감속하며 지나가고 작은 손짓에도 무조건 멈춘다.

적절한 차가 없어 몇대를 지나보내고 밴을 한 대 잡았다. 크기도 충분하고 가는 곳도 아바나 Vieja이다.

그대로 우린 무료로 온 길을 되돌아 갈 수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은 어두웠다.

서서히 다가오는 아바나의 희미한 불빛을 보며 생각했다.

여행은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어쩌면 이미 끝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여행을 통해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 수많은 걱정과 두려움이라니. 그거라면 된 거 아닐까. 그러한 감정들이 어쩌면 가장 소중할지도 모른다.

쿠바 초반에 너무나 불안했는데. 철저한 준비와 대비와 모든 짐을 잃고 이제야 깨닫는다.

경찰이 잡아준 지나가던 밴. 휘장과 온갖 훈장들을 주렁주렁 단 군복의 늙은 군인과 동승하였다;;;

The civilian Van, the police recruited for us, taking us back to Havana 

경찰서에서 소개해준 숙소는 Obispo 거리 근처에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제 자전거는 3대 밖에 없다.

이전에는 화려하고 번잡한 Obispo만 보았지만 이번에 찾아가는 길은 전혀 다르고 한적했다.

우리가 머물게 된 두 번째 까사를 찾았다. 외관은 허름한데 속은 제법 잘 꾸며놓았다. 우리끼리 쓸 수 있는 부엌도 있다.

옷이 하나도 없어 명진언니 옷을 빌려입게 되었다. 씻고나서는 혼자 여행한다는 미국인과 수다를 떨었다.

다 잃어버리고 나니 오히려 편했다고.... 어제까지의 내 불안함은 씻은듯이 날아가있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원래 우리가 까사에서 머물기로 한 날이었다.

- 지민 -

- 24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