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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쿠바 여행기]29화. 무거운 이야기 몇가지 | 만리행

2011/10/04 (화)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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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많은 관계로 29화의 정기연재 포스트에는 모든 이야기를 담아두지는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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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는 다소 무거운 얘기를 꺼내보도록 하죠.

우리가 왜 쿠바에까지 오게 됐는지, 그 목적에 관한 이야기 말이죠.

모든 여행에 테마나 주제가 있듯이 우리의 여행도 목적이 있었습니다.

쿠바에 가고 싶다, 혁명을 보고 싶다

20대의 들끓는 가슴에서 우러난 한마디-“혁명”-이 바로 우리의 키워드입니다.

우연찮게 읽은 책에서 쿠바에 대한 관심이 싹트고,

연이어 읽게 된 또 다른 책들은 관심을 열망으로 키워주었습니다.

“쿠바에 가고 싶다, 혁명을 보고 싶다”

우리처럼 쿠바에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타고 온 버스겠지요?

비디오 카메라, 사진카메라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쿠바를 담아오기로 했습니다.

아바나의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온갖 사람들과 마주쳤습니다. 덕분에 그 일면을 일일이 들여다보지는 못하더라도 이 도시와 나라 전반에 덮여있는 분위기를 알아챌 수는 있었죠. 사실, 아바나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흡수하고 있는 이 곳에서 이 도시를 알면 이 나라를 알 수 있다고 우리는 감히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가슴속에 혁명이 들어설 자리는 더 이상 없다

어떤 모습을 우리가 상상하고 있었을까요?

모두가 가난하지만 정겹게 살고, 낡고 헤진 옷을 입지만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희망을 가지고 혁명을 외치며, 거리 곳곳에서 춤에 열광하는 그런 모습, 가난한(…) 자전거 여행객에게 물 한 잔이나마 권하며 그늘에서 쉬어가라고 하는 그런 모습, 무럭무럭 자라나는 자신의 수확물을 바라보며 기쁘게 이마의 땀을 훔치는 건강미 넘치는 농부의 모습…

우리가 틀렸습니다.

Adidas나 Puma와 같은 자본주의세계에서 온 물건들이 허름하나마 합법적인 매장에 진열되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는 우리에게는 매우 큰 충격이었지요. 수 년 전 쿠바가 일반 외국인들의 방문을 허용한 뒤로는 조금씩 서방세계(혹은 자본주의세계)의 문화가 흘러 들어오고 있습니다.

항공표와 함께 끊어주는 거의 형식적인거나 다름없는 비자도 발급해 줍니다.

다만, 여권에 부착하거나 스탬프를 찍어주는 방식이 아니라서

(미국법상으로 불법인)미국 사람들의 쿠바 방문의 증거가 남지 않습니다.

외국인 방문객들을 자신의 까사(민박집)에 유치하려 버스 정류장에 줄 선 까사의 주인들

사람들은 더 이상 헤진 옷을 입지도 않고, 혁명을 외치거나 피델이나 체를 찾지도 않습니다. 여느 자본주의국가들이나 마찬가지로 택시기사들이나 시가를 파는 삐끼들은 관광객들에게서 돈을 받아내려 혈안이 되어있고요.

그리고 쿠바에 거지라니요! 돈은커녕 밥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먹고 교육받을 수 있다고 알던 이 곳에서 끼니조차 어려워 구걸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이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쿠바의 밤은 꽤 쌀쌀한데 이 사람들의 건강이 심히 염려됩니다.

그 유명한 도시농업마저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 도시 농장들이 생산하는 농작물의 양은 소비량에 비하면 극히 미량입니다.

쿠바의 무장 혁명이 끝난 지도 반세기 넘게 지났습니다.

쿠바의 국부라 불리는 호세 마르띠(Jose Marti)

혁명광장에 있는 그의 뒤에는 공산혁명을 상징하는 별을 형상화한 혁명기념탑이 있습니다.

호세 마르띠는 쿠바 민족을 위해 헌신한 민족주의자였을 뿐입니다.

사후 후손들에 의해 그는 공산주의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서점에는 혁명관련 서적이나 (미국이 참여한 전쟁의)반전에 관한 서적이 대부분입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혁명은 쿠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영원히 잊혀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혁명은 간간히 보이는 구호표지판으로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혁명이 들어설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쿠바엔 아직 답이 있다

그럼에도 아직 쿠바가 모범적인 공산국가로 보일 수 있는 이유는 남아있습니다.

종석이가 감기에 걸려 고생하던 날, 쿠바의 의료진은 무료로 진료해주고 주사를 놓아주었습니다. 그들이 받은 것은 소정의 내복약 값뿐입니다. 그럼에도 낡았으되 충분한 의료시설을 갖춰놓았으며, 의료진의 의술은 뛰어나서 종석의 감기를 한번에 날려보내주었죠.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한 중요한 사항입니다. 아이들이 노동현장에 투입되지 아니하고 교복을 입고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것은 국가가 교육의 모든 부문에 걸쳐 전액 지원하기 때문이죠.

적절한 초등교육을 받은 아이들로부터 우리는 솔직하고 거짓없는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죠.

실업률도 상당히 낮은 선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국가가 기본적으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쿠바를 떠나는 날, 비행기가 3시간 연착되었는데 아무도 사과는 커녕 안내방송조차 해주지 않습니다. 공항의 인력이 그렇게나 많은데도 말입니다.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방법이 사실은 국영 상점이나 기업에서 근로자의 수를 늘이는, 말하자면 일시적인 때우기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최근 쿠바 정부는 간단한 간이음식점에 한해 개인영업을 허용하였습니다. 일자리 창출과 개인의 노력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는 일종의 부분적 자본주의인 셈입니다.

북한은 두려움에 사로잡혀있고 남한은 깨어있다

현재 쿠바는 공식적으로 미국과 적국인 상태입니다.

사회주의권이 몰락한 이후 급격한 무역량 감소와 이에 따른 경제적 빈곤으로 인하여 쿠바의 외교정책은 그 대상을 보다 폭넓게 확장시켰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무역대상국은 중국으로, 쿠바의 자동차 및 많은 공산품들과 산업시설들이 중국에서 수입되었고 양국간의 유학생교류도 활발합니다.

그런데도 쿠바 사람들에게는 중국인에 대한 태도는 상당히 모순적입니다. 중국의 원조가 상당함에도 우리가 만난 쿠바사람들은 중국에 대해 그닥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더군요.

“왜 중국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심한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분명 무시하고 놀리는 것 같은데 또 입장권 할인해주고 중국에서 왔다 하면 반기고……신기해하지만 자기들이 더 잘났다는건가ㅋㅋㅋ중국인이 하도 많아서 만만한 외국인이라 그런가보다.”

한편 우리나라와 쿠바는 애매한 관계로 보여집니다. 현대자동차가 우수한 품질로 현지에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쿠바 사람들은 학교에서 대한민국을 적국으로 교육받고 있지요. 반면, 우리 위층에 사는 말썽쟁이 부칸은 사회주의 혁명을 이룩한 훌륭한 공산국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고등교육을 받은 이곳의 지식인들은 무엇이 진실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남한이 6·25전쟁을 일으킨 것은 맞다. 하지만 북한이 남한보다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북한의 김일성 찬양에 대한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반면, TV를 통해 남한 사람들이 독재에 대항해 시위를 하였고 이들이 정의를 되찾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남한 사람들은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남한은 깨어있으며 점점 나아질 것이다. 유학 온 북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인 있었는데, 동독이나 기타 사회주의 국가에서 온 학생들과는 달리 친구를 사귀지 못했으며 항상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다.”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쿠바와 같은 사례는 지금껏 인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50년 전, 아무도 쿠바가 이렇게 오래 버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죠. 20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도 쿠바는 꿋꿋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 쿠바가 지금은 변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심지어는 미국인도 비공식적으로)이 방문하고 있고, 제한적이나마 자본주의적 요소가 도입되어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교육이나 의료서비스, 식량 및 주택과 자동차 배급은 그 와중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죠. 이미 베트남이나 중국이 사회주의적 요소를 완전히 포기하고 자본주의 국가로 탈바꿈한 상태에서 이는 매우 독특한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델 카스트로가 물러나고 아우인 라울 카스트로가 집권하면서 점차 해외에 문호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아, 피델은 엄연히 독재자이지만 그에 대한 찬양이나 거리 선전문구가 전혀 없다는 것 또한 특이합니다. 독재자이되 검소한 삶과 개인의 우상화 대상이 되지 않은 독재자는 아마 그가 유일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지금 있는 스리랑카의 대통령은 독재는 아니지만 거리 곳곳에는 그의 사진과 문구가 가득하고, 신문에는 그의 업적을 찬양하는 기사로 넘쳐납니다.)

문호를 개방하고 있음에도 미국 자본 투입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는 점 또한 주목해 볼 만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정말 궁금합니다. 쿠바가 걷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그 길의 모습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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