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안녕, 쿠바

아바나의 Vieja 광장

쿠바에서의 사실상 마지막 날.

시원하지도 섭섭하지도 않고 그저 멍멍한 기분.

하지만 여행이라면 응당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설레고 기대되는 여행이 아닌 피자-츌레타 소세지의 나날들.

어느새 이곳은 단순한 생존의 공간이 되었고,

그것도 불편하고 몸서리치게 외로운 곳이었다.

쿠바에는 2주 정도 있었지만 이곳에 어느새 적응되어 버렸다.

물건사기 힘든 시스템, 맛없는 음식,

하염없이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짜증스러운 느긋함 까지도.

하지만 더 이상은 싫다.

마지막 날인지라 할 일이 제법 많다.

그래서 일찍 일어나려 했으나...

자전거 타기를 멈춘지 너무 오래된 우리는

결국 1시간 늦게 일어나버렸다.

일단 아침식사를 하면서도

마지막 호아끼나의 아침이구나 하는 생각에 제법 기분이 경건했다.

이 과야바 잼은 좀 그리울 것 같다. 그리고 이 고소한 커피도.

호아끼나 할머니의 까사에 우리의 족적을 남기고 왔다.

카페 Escorial...원두 볶는 구수한 향이 진하다.

일행들이 카페 Escorial에 원두를 사러 간 사이에

지민과 두현은 공금을 환전하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CADECA(Casa de Cambio: 국영환전소)에 갔더니

멕시코 돈이 없단다. 다른 CADECA에서도 없다.

일부러 안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없단다.

공금이 휴지조각이 되게 생겼다.

일단 숙소로 돌아와

호아끼나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Banco Internacional에 가보라고 한다.

한참 헤매다가 아아아주 멀리 비에하 광장에 가서야 발견했다.

여기서도 돈이 없다는 청천벽력을 들었다.

그런데 창구마다 또 다른지 다른 한 창구에서 된다고 해서

그리 나쁘지 않은 환율로 돈을 바꾸었다.

그렇지 이 나라는.

없다가도 생기는 나라.

커피사고(커피 향은 정말 좋았다) 돈 바꾸고,

우리가 정말 쿠바에 왔다는 인증을 하기 위해

혁명광장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숙소로 돌아왔다.

유명한 쿠바 내무부 건물의 체게바라 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에티오피아 계 캐나다인 Ammanuel에게

남은 세 대의 자전거 중 두 대를 눈물을 머금고 팔아버리고

(사실 그로서는 있는 힘껏 우리를 도와준 셈이다...)

버터와 잼, 빵을 사서 공항으로 향했다.

남은 쿠바 돈으로는 샌드위치, 맥주, 음료 등을 싸서 갔다.

쿠바의 맛있는 빵은 마지막까지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두현은 마지막 남은 자전거에 올라 공항으로 향한다.

여행의 끝을 맺으려 한다.

페달을 밟고 출발한 곳으로 다시금 페달로 돌아간다.

속도를 점점 낸다. 주위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간다.

곧,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금 바라는 건

이 자전거가 멈추지 않도록 타이어가 펑크 나지 않는 것뿐이다.

공항까지는 쉬지 않고 가려 한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에서 욕이 새어 나온다

완전 망했다...어떻게 온 곳인데......시발.

쿠바를 떠나는 날, 하늘은 야속하게도 매우 청량하다.

공항에 다시 모인 우리 팀은

자전거를 분해하고 포장한 후 맥주를 한잔씩 했다.

아디오스 쿠바는 공항에서 멋지게 노숙하며 마무리 한다.

공항의 흡연실을 점거하고 매트를 깔고 잠자리에 든다.

한 명씩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기로 한다.

다음날

오후 1시에 이륙해야할 쿠바나는 2시간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

쿠바나는 사과는커녕 아무런 설명조차 없다.

게이트가 두 번 변경되고

(아무도 안 알려준다...직접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

두 시간 넘게 기다려서야 겨우 비행기에 오른다.

공항세(25CUC)을 지불하면 항공권 뒤에 붙여주는 인세증.

반드시 내야 한다. 내지 않으면 쿠바에서 나갈 수 없다.

또다시 닭장 같은 비행기 안.

두현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쿠바인, 오른쪽에는 미국인이 앉았다.

말 한마디 없는 쿠바인과는 달리

미국남자는 앞사람이 좌석을 뒤로 젖히는데 항의하며 거만하게 행동한다.

비행기 안은 미국인들이 영어로 떠들어대는 소리로 가득하다.

대충 들어봐서는 쿠바에 대한 불만일색.

그럼 도대체 무얼 기대하고 쿠바에 왔을까. 오만하다.

쿠바 땅이 점점 멀어져 가더니 이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쿠바를 제대로 보지 못했고

그들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

평가를 할 수 없는 상태로 이 나라를 떠난다.

과연 여기를 다시 찾아 올 날이 있을까 싶다.

근데 다음에 여기 와도

여기서 본 그 때 그 사람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볶음밥 팔던 아저씨, 순찰 다니는 경찰,

딱씨(Taxi)를 외치는 아저씨, 변태같은 놈들, 호아끼나 아줌마

그리고 지데키스까지...

모두 변하지 않고 그자리 그대로 있을 것 같은 느낌...

무언가...끝내지 못하고 돌아가는 느낌이다.

말하자면...숙제를 다 하지 못하고 학교에 가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한 느낌...

아니 원래 알고 있었는데 숨어있어서 잘 티가 안 났던

뭐 아무튼 쿠바라는 나라에서

내가 좀 더 성숙해진 것 같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길 바란다.

그냥 그렇게 믿으련다.

멕시코가 보인다.

안녕, 쿠바.

- 33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