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모든 것이 뒤바뀐, 그 다음 날의 아침.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과 풍성한 아침식사. 굉장히 기묘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다 털리고 난 다음, 그리고 경찰서에서의 하루 동안 수많은 상념들이 머리를 헤집었다. 하지만 그 모든 생각은 한 마디로 귀결된다.

"우리 이제 어떡하지?"

 쿠바에는 우리를 보호해 줄 대사관이 없다. 공식적으로 한국과 수교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송금받을 수도 없다. 신용카드로 돈을 뽑을 수는 있다고 들었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은 생각도 못해서 준비하지 못했다.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여행하기를 바랐던 마음 때문인지 비상금도 거의 제로. 자전거와 장비를 새로 사서 여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그보다는 생존의 문제였다. 당장 우리가 잘 곳, 먹을 것, 입을 옷조차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그래서 우리는 자전거 여행을 포기했다.

 버스나 택시로 여행을 계속하면 안되냐고? 유감스럽게도 쿠바의 교통비는 생각보다 비싸다.

 부족한 예산, 3일 중 1일만 숙박하던 원래 일정에서 전일 숙박해야 한다는 사실(번잡한 아바나에서 캠핑할 수는 없다), 비싼 도시의 물가, 그리고 여벌옷이나 세면도구조차 없는 4인. 그 모든 상황 상 자전거 여행은 불가능했다.

 자전거 3대로 3명이라도 자전거 여행을 계속하면 안될까? 멸 생각을 다 해보았지만 펌프, 패치, 각종 수리도구 등도 함께 다 털렸었고, 쿠바는 그런 장비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멕시코로 '탈출'하는 비행기편을 앞당겼고, 그 전까지 10일을 아바나에만 머물러 있게 되었다.

 이 기간은 우리 여행에서 굉장히 특별하고,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또 가난하고 절망적이면서도 아련한 시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훨훨 날아다니던 자유로운 우리들이 발에 쇠사슬이라도 박힌 양 한 곳에 머물러야 했던 유일한 시기. 그러면서도 서로의 얼굴보다 등을 더 많이 바라보던 우리들이 비로소 많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전까지의 멕시코 여행과 달리, 이 기간의 여행을 일정대로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루하루가 비슷하면서도 순간순간이 달랐다. 우리에게 아바나는 단편적인 장면들로 남아있다. 어제가 오늘같고 내일도 어제같을 일상들... 그러니 그에 맞는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 처음으로, 우리가 머물렀던 특별한 숙소, La Casa de Senora Joaquina, 통칭 호아끼나를 소개한다.

아바나 전형적인 거리의 모습

 아바나 까사(외국인이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숙소. 허가받은 가정의 집에 머무는 식. 대부분 의외로 상당히 쾌적하다)의 방 하나는 약 30cuc. 남녀 하나씩 잡으면 총 60cuc가 된다. 물론 아침식사는 포함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호아끼나의 집을 알게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아바나에서의 첫 날, 종석이와 해웅이가 새 짐받이를 찾아 몇시간이고 아바나를 헤맸던 그 날 까삐똘리오(Capitolio) 앞에 자전거와 함께 멀뚱히 앉아있던 우리 넷을 본 그녀, 세뇨리따 장이 호기심에 우리와 대화를 나누러 내려왔다.

의외로 추웠다

 그녀는 여러가지 정보와 함께 '호아끼나'를 추천했다.

한국인, 일본인이 많이 모이는 숙소라는 점

(드물게도)1인당으로 계산하는 도미토리형 까사이며 아침식사를 제공한다는 점,

한국인들이 정보를 모아놓은 '빨간공책'이 있다는 점 등.

그날엔 아바나를 바로 떠날 예정이었기때문에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호아끼나에 머물렀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더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곳이다.

까삐똘리오. 멋진 건물이지만 현재 쓰이지는 않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