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니 다사다난했던 지난 여행의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근질근질한 몸을 달래고 저희가 야심차게 준비한 30화 이벤트!
 
 
 
...전에 일단 30화의 주제는...바로 녹색혁명입니다.
저(지민)이 개인적으로 쿠바 공산주의 혁명보다도 훨씬 관심있게 조사했던 분야이기도 하지요.
 아바나의 녹색 혁명을 간단히 설명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쿠바는 소련의 붕괴 이후 엄청난 식량 위기에 봉착합니다.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도시농업을 장려하게 되죠.
 '식량을 줄 수 없다. 대신 직접, 남아있는 땅이 있다면 식량작물을 재배하라. 땅이 없다면 화분에라도 심고, 옥상에라도 심고, 텃밭 모서리나 아이들 놀이터에라도 심으라. 정 안되면 정부차원에서 땅을 빌려주겠다!'

 

상상이 가시나요? 다른 나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바나는 쿠바인구 80%가 사는 대도시입니다. 넓은 땅은 별로 남아있지 않겠죠. 여기저기에서 식량작물을 기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정부 이전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직접 기르기 시작한 것도 있겠네요. 정부는 이러한 특수성에 맞추어 잘 자라는 작물 개발, 더 나은 재배 방식 등을 연구합니다. 다만 자금 등 순전히 현실적인 이유로 비료, 살충제 등은 화학약품으로 쓸 수가 없어서 대신 친환경적이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연구를 진행하죠...
쿠바 정부는 국민들은 각자 텃밭을 일구고 근교에는 소규모 밭을 운영하여 최대한 아바나 시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시민들이 손쉽게 묘목과 씨앗을 살 수 있는 기관인 CTA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운영됩니다. 이곳은 아바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아바나는 식량자급을 완전히 성공하고, 위기가 기회가 되어 아름다운 녹색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곳으로 재탄생합니다. 또 오늘날 이러한 지속가능한 친환경 농업이 각광받게 되면서 과거에 화학약품을 남용하던 다른 나라에서도 오히려 찾아와서 쿠바의 선진 농업을 배운다...그리고 지금도 각 가정에서 생산한 신선한 야채는 가정에서 소비되거나 이웃으로 팔려나가 아바나 인들의 식생활을 건강한 녹색으로 물들였다, 뭐 그런 이야기 입니다. 쿠바라는 나라에 어울리게 낭만적입니다.
한국에서 사전조사할 때도, 많은 분들이 아바나의 농업을 이상적으로 설명하며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시더군요.
 
하지만 2011년 제가 가서 직접 본 아바나는, 예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아바나는 창백하고 퇴락한 회색이었지요. 서울이 회색정글이라고 하지만 쿠바에 비할바가 아닙니다. 창밖으로 가득한 화분은 다 어디갔을까요? 곳곳에 늘어진 과수와 작은 밭들은요?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디에서나 초록빛인, 아바나의 자랑인 도시 유기농업은 어디로 간걸까요? 궁금증만 가득한 채로 저는 아바나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는 여러가지 우연으로 인해 우리는 아바나에만 줄곧 머무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우리는 아바나의 도시농업에 대해 조사를 나섰죠. 세뇨라 호아끼나에게 물어보고, 직접 발품을 팔아 농림부에서 견학을 시도했으며, 아바나 근교의 농장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아바나치고 상당히 큰 규모의 시장을 들러 상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어 보기도 했습니다. 아바나의 수많은 음식들을 직접 먹었고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쿠바에 진정한 의미의 도시농업은 이제 없습니다-. 라고요.
 
 
아바나 시장에서 발견한 피망
 
화분에라도 무언가를 심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당장 먹을 것이 없을 때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지금의 쿠바는 그렇지 않아요. 빈부격차라는 또 다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사람들이 먹을 식량은 다른 곳에서라도 공급이 가능합니다. 어차피 필요에 의해 생겨난 도시농업, 필요가 없다면 없어지는 것이 맞는 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네의 보릿고개 이야기처럼, 쿠바에서 도시농업은 옛날 그 힘든 시절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가는 곳마다 열심히 기웃거렸지만, 베란다에 놓여있는 화분 중에 식용으로 보이는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모서리 텃밭이나 옥상 밭은 물론이구요.
 
 
시내의 또다른 야채가게. 신선하지가 않다는 것이 단점.
 
쿠바의 경제사정이 다시 정상화되어 모든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게 되어 도시농업이 필요없게 된 것이라면,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더 잘된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쿠바인들의 식생활은 어떨까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걸 먹이고 싶지는 않다."
 
 
 물로만 반죽한 빵에 고무냄새가 나는 치즈, 맛도 이상하지만 색이 노란색과 분홍색인 햄. 소스는 바른듯 만듯해서 맛도 안나고, 야채는 하나도 안들어있는, 소금간도 전혀 안되어있는 전형적인 쿠바 피자. 그나마 접시에 담겨나온 다는 것은 고급.

단조로운 맛은 논외로 치더라도, 쿠바에서 저희가 접한 음식들은 전혀 영양 균형이 맞지 않았습니다. 일주일간 먹었던 음식의 85%는 밀가루, 8%는 지방, 그리고 단 7%만이 단백질이나 야채, 과일이었던 것 같네요. 길거리에서 먹을 수 음식은 재료도 빈약한 피자, 스파게티, 햄버거 정도...야채라고 해보았자 양파, 양상추 정도입니다. 긴 줄을 기다려 피자를 사서는 마치 자동차에 연료를 넣는다는 듯이 반으로 대충접어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자리를 뜨는 쿠바노/나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밀은 아시다시피 집에서, 도시에서 키울 수 있는 작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음식이 밀가루라면, 식량 자급을 한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대체 신선한 야채와 식량 자급자족이라는 말은 어디서 나온걸까요? 야채는 다 배급받는 걸까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오래 살다가는 영양 불균형으로 병 걸릴 것 같더군요.
 
 

시장으로 갔습니다. 야채가게 아저씨에게 물어봅니다. 이 야채는 어디에서 왔냐고요. 아저씨는 말씀하시더군요. 이곳에서 많이 떨어진 농촌에서 왔다고 합니다. 도시에서는 작물을 안기르냐고 물어봅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아니라고 하네요...
 
농림부에서 인터뷰를 거부당하고 마지막으로 교외의 농장으로 가봅니다. 오르가노포니코(organoponico)는 아바나, 쿠바 고유의 작법인데요, 쉽게 설명드리자면 길고 좁은 화분같은 형태로 밭을 만들어 효율과 생산을 증진시키는 방법입니다. 
 
 

 
오르가노포니코에서 쑥쑥 자라는 양상추, 양상추, 양상추...

 
아바나에서 본 몇 안되는 평화롭고 푸른 장면
 
외국인들이 모여와 견학하고 싶다고 하니 친절하게 안내해줍니다. 쿠바의 국영기관 치고는 정말 드물게 친절하네요. 
미리 조사해왔던 것들이 보이니 감동적이고 신기해서 물어봅니다.
 
"지력이 고갈되지 않기 위해 작물을 이렇게 섞어서 재배하는 것이 맞나요?"
-특별한 이유는 없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금잔화를 심어서 해충을 쫓는 것 맞나요?"
-친구가 죽어 애도를 표하기 위해 (밭 한가운데에)심었다고 합니다.
 
"친환경 비료를 쓰는 것이 맞나요?"
-굳이 화학비료를 안쓰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걸 쓴 답니다. 특별히 친환경 농법에 대해 자부심 등이 있는 건 아니라네요.
 
이곳까지 와서 배신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아바나 물론 지금도 교외의 농장이 남아있습니다. 여전히 화학 비료베란다에는 화분이 있고 야채가 배급되고 있지요. 하지만 직접 다녀와본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쿠바는 전 세계 히피들, 친환경주의자 들이 호들갑떨만한 유기농, 도시농업의 메카가 아닙니다. 더불어, 식량 자급을 이룬 곳은 아니고, 건강한 식생활을 바탕으로 건전한 시민들이 사는 지상낙원은 더더욱 아닌 것이죠. 
 
이러한 아바나의 실상이 서서히 알려지고 있나봅니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던데?'하는 글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네요.
(더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실상이 궁금하신 분들은 lofsis님의 글 http://blog.naver.com/lofsism?Redirect=Log&logNo=60131547807를 참고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0화 끝-
 
잠깐! 이벤트에 참여하고 가세요!
 
 
저희 여행기에 대한 뜨거운 관심에 보답하기 위한 30화 기념 깜짝 이벤트!
혼란을 막기 위해 본 이벤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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